THE OUTSIDER

1

ROOFTOP SIGNAL

COORDINATE 1 / KABESHIN CITY

한국어판 · 원본

TOJI

옥상에서 온 신호.

보아서는 안 되는 여자.

물이 먼저 왔다.

몸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짠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고, 어딘가에서 낮은 엔진 소리가 울렸다.

배 위였다.

아니었다.

눈을 떴다. 천장이 있었다. 파도 대신 창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카베신시티였다.

몇 년째 그 순서가 헷갈렸다. 잠에서 깨는 것과, 배 위에서 눈을 뜨는 것과, 아직 아무것도 안 뜬 것. 꿈은 아니었고 회상도 아니었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매번 몇 초씩 발이 걸렸다.

발이 완전히 걸리는 날은 반드시 담배를 피워야 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라이터가 세 번 만에 붙었다. 캘빈 것도 그랬다. 그 버릇만 남아 있었다.

연기가 흩어지기 전에, 맞은편 건물 옥상에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이 컵을 놓쳤다.

그다음에 두 손이 목으로 올라갔다.

넥타이를 푸는 동작 같았다. 더운 날이었으니까.

한 손이 내려왔다.

다른 한 손은 안 내려왔다.

그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한 걸음, 두 걸음. 걷는 게 아니라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난간이 무릎 뒤에 닿았다.

떨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사람이 사라지는 소리는 언제나 생각보다 가벼웠다.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서 다 타들어갔다.

밑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난간에 팔을 걸치고 그걸 내려다봤다. 몸 옆에 서류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뚜껑이 열려서 안의 것들이 쏟아졌다. 만년필. 명함. 접힌 우산.

그리고 종이컵 하나가 인도 위를 굴러가다가 배수구 앞에서 멈췄다.

안에 든 것은 이미 다 쏟아졌다.

나는 그 컵을 한참 봤다.

얼음이 다 녹은 커피를 들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 마시는 게 아니라 들고 다니는 사람. 차가우니까, 라고 말하던 사람.

담배를 다 피우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 ◆ ◆

그날 오후, 사무실 문이 열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다들 그랬다.

"웨인 탐정님."

내가 여기서 쓰는 이름이었다. 육 년째 쓰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죽은 사람도 값만 치르면 이름 하나를 빌릴 수 있었고, 오래 빌리면 그건 그냥 이름이 됐다.

"들으셨죠? 자살사건인데 좀처럼 풀리지가 않네요."

지역 형사였다. 이름은 나중에 알았다. 서른도 안 돼 보였고, 넥타이를 오늘 처음 매본 사람처럼 매고 있었다.

"누가 보냈어."

"저희 과장님이요. 이런 건 웨인 씨한테 가보라고 하셔서."

"그 인간 아직 안 잘렸구나."

"...예?"

"아니야."

"뛰어내리는 거 봤어."

"직접요?"

"맞은편 옥상에서."

형사는 그걸 메모하려다 멈췄다.

"그럼 유서 얘기도 들으셨어요?"

"아니."

"본인 필체가 아니래요. 근데 본인 손으로 쓴 건 맞대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둘 다일 순 없잖아."

"그러니까요."

형사가 서류 가방을 책상에 올렸다.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 만년필과 명함과 접힌 우산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낡은 가죽 수첩이 나왔다.

명함을 집었다.

부소. 무역회사 경리팀 과장. 마흔둘. 대출 없고, 이혼 경력 없고, 특이사항 없음.

"평범하네."

"그러니까 이상해요." 형사가 사진 한 장을 놨다. "같은 팀 사람들은 조용하고 성실했다고 하는데, 다른 층 사람들은—" 형사가 수첩을 뒤졌다. "무섭다고 했어요."

"무슨 뜻으로."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안 받고 눈을 안 마주쳤대요. 근데 어느 날은 완전히 딴사람처럼 웃으면서 인사하고 다녔대요. 같은 층, 같은 달이에요."

사진 속 얼굴은 하나였다.

"그리고 이건 별 얘긴 아닌데." 형사가 페이지를 넘겼다. "옆자리 직원이 그러는데, 부소씨가 숫자 셀 때 왼손으로 책상을 두 번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대요. 십몇 년을요."

"그게 왜 진술에 있어."

"본인이 먼저 꺼냈대요. 죽기 사흘 전에."

"뭐라고."

형사가 그대로 읽었다.

"요즘 이게 안 나온다고요."

나는 봉투를 열었다.

장갑을 끼고 종이를 꺼냈다. 글씨는 작고 반듯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견딜 수 없다.

그 한 줄뿐이었다.

종이를 기울여 빛에 비췄다. 획 끝이 전부 오른쪽 위로 빠져 있었다. 오른손잡이가 쓰면 반대로 빠진다.

명함 뒷면의 메모는 오른손 각도였다.

마지막 한 줄만 왼손이었다.

수첩을 넘겼다.

앞쪽엔 숫자와 날짜가 있었다. 경리팀 과장의 글씨였다.

중간부터 기울기가 반대로 돌아갔다.

뒤쪽은 글씨가 아니었다. 도장 하나가 손으로 수백 번, 페이지가 찢어질 때까지 눌러 그려져 있었다. 세 개의 선이 원 안에서 서로를 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도장을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어떤 운송서류 모서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날 내 옆에는 얼음 다 녹은 커피를 든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먼저 그 도장을 짚었었다.

이거 본 적 있어요?

나는 그때도 없다고 거짓말했었다.

이번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강박증 아닐까요."

형사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앞쪽 도장은 삐뚤었다. 뒤로 갈수록 반듯해졌다. 마지막 장은 자로 그린 것 같았다.

강박은 이렇게 늘지 않는다.

"현장 가보자."

"지금요? 사진만 봐도—"

"사진은 안 물어."

◆ ◆ ◆

부소 집은 볼 게 없었다. 침대는 각 잡혀 있었고, 옷장은 색깔별로 걸려 있었고, 식탁 위엔 먼지 한 톨 없었다.

살던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던 사람이 지운 것처럼 없었다.

두 가지가 어울리지 않았다.

첫 번째는 냉장고 옆이었다. 회원카드가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웃는 코끼리 그림. 파칭코 가게 이름.

"이런 사람이 이런 델 다녔어요?"

"안 어울려서 물어보는 거잖아."

나는 그걸 챙겼다.

두 번째는 옷장 안쪽이었다.

옷을 밀자 나무판이 드러났다. 연필로 그은 짧은 가로줄이 여러 개 있었다. 아이 키 재는 자국 같았는데 방향이 옆이었다.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줄마다 날짜가 있었다. 첫 줄은 일주일 전. 마지막 줄은 어제.

간격은 하루에 손가락 두 마디쯤이었다.

마지막 줄 옆에는 날짜 대신 짧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더 갈 데가 없다는 것처럼.

"이건 뭐예요?"

"몰라."

정말 몰랐다.

사진만 찍었다.

◆ ◆ ◆

가게는 오후 세 시부터 불을 켜고 있었다. 구슬 쏟아지는 소리, 기계음, 담배 연기, 그리고 아무도 서로 말을 안 하는 침묵.

점장은 카드를 보더니 바로 자리를 짚었다.

"저 끝자리요. 삼 년째 저 자리만 앉으셨는데."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아직 그 사람 모양으로 눌려 있는 것 같았다.

옆자리 남자에게 물었다.

"부소씨 알아요?"

오십 대쯤 돼 보이는 남자였다. 카디건. 슬리퍼. 오른손으로 레버를 잡고, 왼손 손끝에 코인 몇 개를 얹고 있었다.

"그럼요. 매일 보는 사인데."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정장, 그 뒤에 선 낯선 형사.

"경찰이세요?"

"오늘 봤어요?"

"오늘은 못 봤어요. 어제까지는 왔었는데." 남자가 레버를 당겼다. "근데 요즘 좀 이상하긴 했어요. 뭔 일 있나 싶더라고요."

"무슨 일."

"몰라요. 그냥 사람이 좀 달라 보였어요. 인사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면서 남자의 왼손이 기계 모서리를 두 번 두드렸다.

톡, 톡.

숫자 세는 사람의 손이었다.

파칭코엔 셀 숫자가 없었다.

나는 그 손을 봤다.

오른손은 오십 대였다. 마디가 굵고, 손등이 거칠고, 손톱이 두꺼웠다.

왼손은 아니었다.

손톱이 정리돼 있었다. 손등에 잡티가 없었다. 검지 옆면에 볼펜 자국 같은 굳은살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서류 만지는 사람 손에 생기는 자리였다.

두 손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손이 좋으시네요."

내가 말했다.

"예?"

"아니에요."

남자가 웃었다. 그러고는 왼손 손끝의 코인 하나를 튕겨 손바닥 위에 올렸다.

손가락은 매끄럽게 움직였다. 다만 남자가 시키지 않은 순서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거 하나 줄까요. 그 자리, 그냥 앉아만 있으면 아까워요."

"괜찮습니다."

"아유, 한 번만 돌려보세요. 부소씨도 맨날 여기서 하다 갔는데."

나는 코인을 받았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그냥 손이 먼저 나갔다.

받을 때 남자의 손가락이 스쳤다.

차가웠다.

흔한 코인이었다. 앞면에 가게 이름, 뒷면엔 아무것도 없었다.

레버를 당겼다.

구슬이 쏟아졌다.

기계 위 불빛이 전부 한 번에 터졌다. 사이렌 비슷한 음이 가게를 채웠다. 천장에서 종이테이프가 내려왔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돌렸다.

잭팟이었다.

지역 형사가 입구 쪽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표정이 아주 천천히 굳었다.

"우와."

옆자리 남자가 박수를 두 번 쳤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운이 좋으시네."

점장이 뛰어왔다. 뒤에 직원 둘이 따라왔다. 한 명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저희 가게 올해 두 번째예요."

"됐습니다."

"사진 한 장만—"

"경찰 일로 왔습니다."

경찰이 아니라는 말은 안 했다.

"아, 그럼 서류만."

직원이 클립보드를 내밀었다. 고액 당첨자 확인서였다. 성함, 연락처, 신분증 번호.

나는 그걸 한참 봤다.

"이거 안 쓰면 어떻게 되죠."

"지급이 안 됩니다."

지역 형사가 다가와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탐정님, 이거 보고서에 뭐라고 써요."

"안 쓰면 돼."

"제가 봤는데요."

"그럼 못 본 걸로 하고."

"자문위원이 참고인 자리에서—"

"뭘 벌써 써."

기계는 계속 울고 있었다. 구슬이 아직도 쏟아지고 있었다. 죽은 사람 자리에서.

옆자리 남자가 종이테이프를 하나 떼어서 나한테 건넸다.

"이런 거 잘 안 나와요. 좋은 날이네."

나는 그걸 받았다.

◆ ◆ ◆

전화가 울린 건 그때였다.

지역 형사가 받더니 잠깐 듣고 나한테 넘겼다.

"부검 1차 소견 나왔는데요."

"말해."

"왼팔이 없어요."

기계 소리가 갑자기 멀어졌다.

"뭐라고."

"왼쪽 팔이 없대요. 어깨에서부터요."

"떨어질 때 나갔겠지."

"그게—" 형사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 "현장에 없었어요. 반경 삼십 미터 다 뒤졌는데 없어요. 그리고 절단면에 출혈 반응이 거의 없대요."

"..."

"죽고 나서 떨어져 나간 것 같다는데, 그러기엔 너무 깨끗하대요. 칼자국도 아니고요."

나는 아침을 떠올렸다.

종이컵을 놓치던 사람. 목으로 올라가던 두 손.

한 손이 내려오고, 다른 한 손이 안 내려왔다.

두 팔이었다.

떨어질 때 그 사람은 팔이 두 개였다.

"어깨에 뭐 있어?"

"어떻게 아셨어요."

"말해."

"가로로 그은 자국이 여러 개 있는데, 다 잘려 있어요. 팔 쪽으로 이어지다가 끊긴 것처럼요. 사다리 같아요."

옷장 안쪽의 연필 줄이 떠올랐다.

하루에 손가락 두 마디씩.

부소는 미친 게 아니었다.

재고 있었다.

칼을 대보면 알았을 것이다. 아픈 데까지가 자기 팔이고, 아프지 않은 데부터는 아니었을 테니까.

그 경계가 매일 조금씩 위로 올라갔고, 그때마다 옷장에 줄을 그었다.

첫 줄은 손목. 마지막 줄은 어깨.

무언가가 손목에서 어깨로 올라오고 있었고, 부소는 그게 언제 도착하는지 세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제일 성실한 수사관은 경리팀 과장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옆자리를 봤다.

남자는 여전히 레버를 당기고 있었다.

톡, 톡.

십몇 년 된 버릇이었다.

부소의 버릇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내가 지역 형사에게 말했다. "다들 돌려보내고."

"제가 그럴 권한이—"

"있어. 있는데 안 써본 거지."

형사가 잠깐 나를 보다가 무전기를 들었다.

"그럼 탐정님은요."

"나는 좀 더 하다 갈게."

"...따셨잖아요."

"응."

◆ ◆ ◆

두 시간을 더 앉아 있었다. 코인을 넣고, 레버를 당기고, 아무것도 따지 않았다.

그러다 버튼을 눌렀는데 눌린 감각이 안 왔다.

왼손 검지였다.

다시 눌렀다. 이번엔 왔다. 한 박자 늦게.

소매를 걷었다. 팔뚝엔 아무것도 없었다. 자국도, 부은 데도, 아무것도.

없다는 게 더 나빴다.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뼈 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부소도 처음엔 이랬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옆자리에서 소리가 났다.

톡, 톡.

◆ ◆ ◆

남자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 건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낡은 다세대주택 2층. 열쇠 소리. 문이 열렸다가 닫히려는 각도로 움직였다.

문틈에 손을 넣었다.

문이 컥, 하고 멈췄다.

"같이 좀 갑시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비명이라기엔 짧고 딸꾹질이라기엔 긴 소리였다.

"아이고 깜짝이야—"

"죄송합니다."

"아니 사람을, 뒤에서—"

"제가 좀 조용히 걷습니다."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요."

"괜찮으세요?"

"괜찮진 않죠."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과했다. 내 손은 여전히 문틀에 끼어 있었다.

남자가 숨을 고르고 문을 마저 열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신발은 그냥 신으셔도—"

"아닙니다. 벗겠습니다."

"슬리퍼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발 시려요."

"...그럼 주십시오."

슬리퍼는 발이 반쯤 나왔다.

◆ ◆ ◆

집 안에서 오래 우린 차 냄새가 났다.

주전자가 올라갔다. 찻잔 두 개가 나왔다. 하나는 테두리 이가 나가 있었다. 남자는 이 나간 걸 자기 앞에 놨다.

"손님 거는 성한 걸로 드려야죠."

"습관이세요?"

"버릇이죠. 오래된 거."

전병 접시가 나왔다. 남자가 그걸 내 쪽으로 밀었다.

"드세요. 눅눅해요."

"...감사합니다."

"눅눅한데도 드시네."

"눅눅한 거 좋아합니다."

나는 앉았다. 차는 뜨거웠고 생각보다 맛있었다.

"차 좋네요."

"열 개 사면 하나 더 주는 거예요."

"많이 사셨나 봅니다."

"오래 마셨으니까요."

남자가 자기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왼손이 잔 표면에서 아주 조금 미끄러졌다. 물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박 하셨죠."

남자의 손이 멈췄다.

"어떻게 아셨어요."

"컵 놓는 순서요. 좋은 걸 남 앞에 놓는 게 아니라 나쁜 걸 내 앞에 두고 시작하시더라고요. 그래야 상대가 편하게 앉으니까."

남자가 웃었다.

"탐정님도 하셨나 봐요."

"보는 건 좀."

"보는 게 제일 잘 늘어요."

"이름 있으셨죠."

"있었죠."

"지금은요."

"없어요."

나는 왼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남자의 시선이 거기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

"왼팔 원래 아저씨 거예요?"

찻물 끓는 소리만 났다.

"...아뇨."

"원래 거는요."

"떼였어요."

"어디서."

남자가 잔을 내려놨다.

"판에서요."

"잃으셨구나."

"아니요. 따고 있었어요."

"그럼."

"밑장 빼다 걸렸어요."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삼십 년을 했는데요." 남자가 웃었다. "그날 처음 걸렸어요."

"누구한테요."

"그날 처음 본 사람이요. 옆에 앉아 있던 손님이었어요. 그쪽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한참 뒤에 들었고요."

"이름은."

"카츠라라고. 성인지 이름인지도 몰라요."

"화 많이 냈어요?"

"아니요."

남자가 전병 반쪽을 접시에 내려놨다.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판 다 끝나고, 조용히 하나만 물어보더라고요."

"뭐라고요."

"왼손이었죠? 하고."

찻물이 식는 소리가 났다.

"어디 판이었어요."

"카지노요. 뒷방 쪽."

"몇 명 있었어요."

"저까지 넷이요."

"나머지는."

"한 명은 남자였는데 거의 자다 갔고요. 한 명은 여자였어요. 계속 잃는데 안 일어나더라고요."

"카츠라 말고는 손님이었네요."

"...손님인 줄 알았죠."

"팔 자를 때 그 사람들은 뭐 했어요."

"...아무것도요."

"말리지도 않고."

"거기서 그런 거 말리는 사람은 없어요."

남자가 잔을 들었다가 비어 있는 걸 보고 내려놨다.

"...근데 아무도 안 놀라더라고요. 그게 제일 이상했어요."

카지노 뒷방에서 사람 팔이 잘리는데 아무도 안 놀란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굳이 더 묻지 않았다.

"팔 잘릴 때 손에 뭐 쥐고 계셨어요?"

남자가 나를 봤다.

처음으로, 웃음이 완전히 사라진 얼굴이었다.

"...코인 하나요."

"그날 이후에 생겼구나."

"..."

"뭐가 생겼는지는 안 물을게요."

남자가 오른손으로 잔을 감쌌다. 왼손은 무릎에 그대로 뒀다.

"...팔을 돌려받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그건 아저씨 팔이 아니잖아요."

"..."

"그건 부소씨 팔이잖아요."

남자가 카디건 소매를 아주 조금 내렸다.

안 보이게 하려는 사람의 손짓이었다.

"오늘 아침에 붙었죠."

소매가 조금 더 내려왔다.

"잘 움직이던데요. 자꾸 딴짓을 해서 그렇지."

남자가 왼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한동안 그래요."

"뭐가요."

"손이 주인을 기억해요."

찻물이 끓다 말았다.

"일주일 걸리죠."

남자가 눈을 내렸다.

"그 손이 아저씨 손이 되는 데. 정확히는, 그 손 감각이 아저씨한테 다 넘어오는 데."

남자가 무릎 위에서 손을 고쳐 잡았다.

"부소씨는 팔을 그었어요. 손목부터 어깨까지, 매일."

"..."

"그럼 아저씨도 느꼈겠네요."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남자가 그걸 눌러 잡았다.

"...밤에 몇 번 깼어요."

"잘 참으셨네."

"..."

"그 사람도 알고 그었을 거예요. 자기가 아저씨한테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으니까."

남자가 전병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모았다. 모아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째 되는 날은요."

"..."

"목을 조르죠. 그 사람 손으로, 그 사람 목을."

방이 아주 조용해졌다.

"직접 안 해도 되니까 편하시겠어요."

"...부소씨는 뒤로 갔어요."

"..."

"조르니까 뒤로 가더라고요. 계속. 그러다—"

남자가 말을 멈췄다.

"난간이 있었죠."

"...네."

"아저씨가 민 게 아니라."

"...제가 조른 거죠."

"그게 민 거예요."

남자가 찻잔 손잡이를 반 바퀴 돌렸다. 잡을 데를 찾는 사람 같았다.

"아까부터 문 쪽만 보시던데."

"..."

"몇 시에 와요."

"...열한 시요."

"몇 명."

"두 명이요."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남자가 웃었다. 아주 짧게.

"장기 값 쳐주는 사람들이요."

"..."

"저는 돈이 없어서요. 몸으로 갚기로 했어요."

"아저씨 몸으로."

남자가 나를 보지 않았다.

찻잔에서 김이 다 빠져 있었다.

"몸은 몸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꼭 아저씨 거일 필요는 없고."

"..."

"그래서 부소씨였고."

"...네."

"근데 부소씨가 일주일을 끌었네요."

남자의 오른손이 왼손 손목을 잡았다. 자기 손인데 남의 손 잡듯이.

"...계산이 빨랐어요, 그 사람."

◆ ◆ ◆

찻잔이 비었다.

남자가 주전자를 들었다.

"한 잔 더 드릴게요."

"됐습니다."

"아유, 물 벌써 올려놨는데."

"...그럼 주십시오."

주전자가 다시 올라갔다.

시계가 열 시 오십 분이었다.

"실례할게요."

남자가 일어났다.

싱크대 쪽으로 두 걸음. 몸을 반쯤 돌렸다가, 돌아온 각도가 처음보다 좁았다.

칼은 짧았다. 과도였다.

목이었다.

팔을 노린 손이 아니었다. 오늘 밤 안에 몸 하나가 필요한 사람의 손이었다.

나는 왼팔을 들었다.

칼끝이 팔뚝에 박혔다.

뜨겁지 않았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남자가 손잡이를 놓지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가 세 번 만에 붙었다.

한 모금 빨았다.

남자가 나를 봤다. 놀란 얼굴이었는데, 놀란 방향이 이상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시간을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 ◆ ◆

문이 열렸다.

두 명이 들어왔다. 코트를 입지 않았고 손에 든 것도 없었다.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무것도 안 든다. 들고 오면 나중에 버려야 하니까.

앞에 선 놈이 나를 봤다.

팔에 칼이 박힌 채 앉아서 담배 피우는 남자를.

"...이거 뭐야."

"말씀드린 분이요." 아저씨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반 톤 높았다. "제 대신 낼 거요."

"산 채로 데려오랬잖아."

"산 거예요. 보시면 알아요."

나는 시계를 봤다.

열한 시 이 분.

파칭코에서 잭팟이 터졌을 때, 이 사람은 박수를 두 번 치고 폰을 꺼냈었다. 나는 그때 구슬을 보고 있었다.

전병도, 슬리퍼도, 차 한 잔 더도 거기서부터였다.

이 집에 들어온 뒤로 나눈 대화 전부가 열한 시까지 나를 앉혀두기 위한 거였다.

늙은 도박꾼이 판을 끄는 방법이었다.

"아저씨."

내가 불렀다.

"...네."

"잘 끄셨어요."

칭찬이었다. 반은.

◆ ◆ ◆

앞에 선 놈이 두 걸음 다가왔다.

나는 담배를 왼손으로 옮겨 물었다. 칼이 박힌 쪽이었다.

그다음은 길지 않았다.

오른손 두 손가락이 앞선 놈 눈으로 들어갔다.

소리가 나기 전에 발로 아저씨를 밀어냈다. 의자가 넘어가고 찻잔이 깨졌다.

뒤에 있던 놈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넣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목에 팔을 걸고 셋을 셌다.

셋에서 몸이 늘어졌다.

담배는 아직 타고 있었다.

◆ ◆ ◆

방이 조용해졌다.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아까 올려놓은 게 이제야 끓고 있었다.

나는 그걸 껐다.

바닥에 눕힌 놈의 셔츠가 어깨에서 말려 올라가 있었다.

등근육 위쪽, 광배근이 시작되는 자리에 작은 레터링이 있었다.

BOHEM.

문신치고는 너무 작았다. 남한테 보이려고 새긴 게 아니었다.

자기가 어디 소속인지 잊지 않으려고 새긴 것 같았다.

"이거 뭐야."

기절한 놈은 대답을 못 했다. 눈이 나간 놈한테 물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애초에 아는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걸 몸에 새기고 다니는 건 대개 제일 아래다. 위쪽은 새길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두 놈 다 내 얼굴을 봤다.

한 놈은 눈이 나갔고 한 놈은 기절했지만, 둘 다 살아서 나갈 거였다.

육 년을 조용히 살았는데 오늘 밤에 다 팔렸다.

아저씨가 오늘 친 수는 전부 실패했다.

딱 하나만 빼고.

저 둘을 이 방에 앉힌 것.

그건 내가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 ◆ ◆

아저씨는 넘어진 의자 옆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려다 슬리퍼가 벗겨졌다. 다시 신으려는데 발이 안 들어갔다.

세 번째에 포기했다.

나는 팔에서 칼을 뽑았다.

오른손을 상처에 넣었다. 뼈에 닿았고, 뼈 위에 얹힌 것도 닿았다.

빼냈다.

작고 납작하고, 피로 미끄러운 것이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소매로 닦았다.

뒷면에 스페이드가 하나 있었다.

상처가 닫히기 시작했다. 빠르게. 살이 스스로 기워지듯.

아저씨가 그걸 봤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씨발."

아주 짧고 아주 더러운 소리였다.

그러고는 자기가 뱉은 걸 주워 담으려는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았다. 그게 오늘 이 집에서 제일 정직한 말이었으니까.

◆ ◆ ◆

"오늘 뭐 하신 건지 세볼까요."

나는 코인을 손가락으로 굴렸다.

"코인 하나 넣으셨고. 못 쓰셨죠."

"..."

"칼 쓰셨고. 안 됐고요."

"..."

"사람 둘 부르셨고."

바닥을 봤다.

"저기 있네요."

아저씨가 벽에 등을 붙였다. 무릎이 세워지지 않아서 다리가 아무렇게나 뻗어 있었다.

카디건 단추가 하나 뜯겨 있었다. 아까 발로 밀 때 뜯긴 것 같았다.

삼십 년 동안 판에서 남의 패를 읽던 사람이, 지금은 자기 슬리퍼도 못 신고 있었다.

"이건 돌려드릴게요."

주머니에서 파칭코 코인을 꺼냈다. 가게 이름이 찍힌 흔한 것.

아저씨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받았다.

자기 손으로.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봤다.

코인이 두 개였다.

하나는 가게 이름. 밑에 깔린 하나는 뒷면에 스페이드.

"이..."

"밑장은 받는 쪽이 모르는 게 재미라면서요."

아저씨가 코인을 봤다. 자기 능력이었다. 자기 몸에 들어가면 뭐가 되는지도 알았다.

아무것도 안 됐다.

그러니까 이건 협박도 아니고 저주도 아니었다.

그냥 삼십 년짜리 기술을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그대로 당한 거였다.

아저씨의 얼굴이 그걸 다 통과했다.

마지막에 남은 건 화도 공포도 아니고, 판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잘 치시네요."

"보는 건 좀 한다고 했잖아요."

◆ ◆ ◆

"부소씨 팔은 두고 가시죠."

아저씨가 왼팔을 봤다.

"...그게 무슨."

"장례를 치러야 할 거 아닙니까. 팔 하나 없이 묻을 순 없잖아요."

"...어떻게 떼요, 이걸."

"그건 아저씨가 알겠죠."

아저씨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만졌다. 이음매를 찾는 손이었다.

찾지 못했다.

그러다 왼손이 움직였다.

톡, 톡.

무릎 위에서, 두 번.

아저씨가 그 손을 봤다. 이번엔 무릎 아래로 못 내렸다.

"...이거 왜 이래요."

"손이 주인을 기억한다면서요."

◆ ◆ ◆

경찰이 오기까지 십일 분 걸렸다.

나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시마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 나를 보고 멈췄다.

"안에 셋 있어."

"...셋이요?"

"둘은 자고 있고 하나는 앉아 있어."

"그, 그럼 저는—"

"앉아 있는 사람은 살인이고, 자고 있는 사람들은 살인미수야. 미수 쪽이 더 급해. 깨거든."

오시마가 무전기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탐정님."

"응."

"이거... 보고서에 뭐라고 써요."

"오늘 두 번째네."

"..."

"쓰지 마. 내일 내가 가서 쓸게."

◆ ◆ ◆

십 분 뒤에 아저씨가 실려 나왔다.

수갑은 오른손 하나에만 채워져 있었다. 왼팔은 규정상 따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 아저씨가 나를 봤다.

"탐정님."

"네."

"저 몇 년쯤 받을까요."

"살아서 나올 만큼은요."

"...그거 좋은 말이에요?"

"나쁜 말이 덜 끝났다는 뜻이죠."

아저씨가 웃었다. 눅눅한 전병 얘기 할 때랑 같은 웃음이었다.

"BOHEM한테는 몇 년쯤일까요."

내가 물었다.

웃음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차 문이 닫혔다.

◆ ◆ ◆

"이름 뭐야."

내가 물었다.

오시마가 고개를 들었다.

"...예?"

"자네."

"오시마요."

"오시마."

"네."

"오시마."

"...네."

"이번 건 의뢰비 안 받을게."

"예?"

"잭팟으로 퉁치자."

"...그거 서류 안 쓰셨잖아요."

"당연히 썼지 임마."

"..."

오시마가 뭔가 더 물어보려다 말았다.

그게 이 일에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 거였다.

◆ ◆ ◆

비는 사무실에 돌아오고 나서 왔다.

창밖에 빗줄기가 사선으로 붙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자문 소견서를 썼다.

세 줄이면 됐다.

목격자 본인. 추락. 자살로 판단됨.

떨어져서 죽은 건 맞으니까. 내가 봤으니까.

거기까지 쓰고 한참 있었다.

매일 자기 팔에 칼을 대서 어디까지가 아직 자기 몸인지 확인한 것. 그게 남의 것이 되어가는 속도를 옷장 안쪽에 그어둔 것. 아프게 하려고 계속 그은 것. 마지막 날까지 손을 안 내준 것.

그 사람이 일주일을 끌어서 상대의 계획이 무너졌다.

들어갈 칸이 없었다.

서류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적는다.

얼마나 오래 안 죽었는지는 안 적는다.

펜을 놓고 일어났다.

계단은 여섯 층이었다. 손잡이가 젖어 있었고, 올라갈수록 빗소리가 커졌다.

철문을 밀자 비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아침에 섰던 자리에 다시 섰다.

맞은편 옥상이 보였다. 난간은 그대로였다. 사람 하나가 무릎 뒤로 밀렸던 자리인데 아무 표시도 없었다. 밑에도 없었다. 테이프도 분필 자국도 이미 걷혀 있었다.

난간에 팔을 걸쳤다. 비는 그쳤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라이터가 이번에도 세 번 만에 붙었다.

왼팔 소매를 걷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손끝으로 난간을 두 번 눌러봤다. 이번엔 제때 왔다.

빠져나간 자리는 원래 아무 자국도 안 남는다.

그 사람은 못 꺼냈고 나는 꺼냈다. 그 차이가 실력이었는지 몸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몸이었을 것이다.

같은 각도에서 다시 봤다.

종이컵을 놓치던 사람. 목으로 올라가던 두 손. 한 손이 내려오고, 다른 한 손이 안 내려오던 것.

그 사람은 뛰어내린 게 아니었다.

밀린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자기 몸에서 도망치다가, 마지막에 발 디딜 데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아침에 나는 저걸 넥타이 푸는 걸로 봤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이 먼저 지워진다. 그다음이 기록이고, 그다음이 얼굴이다.

버릇은 제일 늦게까지 남는다.

가끔은 남의 손에 옮겨 붙어서까지.

부소는 팔 하나 없이 묻힐 것이다.

그 팔은 지금 유치장에 앉아서, 아무도 안 볼 때 두 번씩 무릎을 두드리고 있을 거고.

주머니에서 종이테이프가 나왔다. 파칭코 가게에서 받은 것이었다. 비에 젖어서 색이 번져 있었다.

그걸 난간에 올려놨다.

바람이 그걸 가져갔다.

◆ ◆ ◆

비에 젖은 코트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전화가 울렸다.

나는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울림에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