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웨인이 죽은 날, 나는 머리에 다섯 발을 맞았다.
먼저 죽은 쪽은 그녀였고, 나중에 일어난 쪽은 나였다.
그해 나는 스물둘이었다.
형사라는 직업은 나한테 잘 맞지 않았다.
사람을 믿어야 했다.
서류에 적힌 시간을 믿어야 했다.
죽인 사람이 죽였다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죽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도장이 찍혀야 끝났다.
그래도 계속했다.
열네 살 때 경찰에 전화를 걸고 도망친 뒤부터, 나는 제복과 배지를 싫어하면서도 그 안쪽을 떠나지 못했다.
고아원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기록에서 지워졌다.
기록을 지운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제인은 내가 살인계로 옮겨온 첫날부터 내 자리를 알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미지근한 종이컵 커피와 전날 반려된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창문을 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맞은편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컵 하나가 밀려왔다.
얼음이 절반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재떨이는 오른쪽이에요."
여자가 말했다.
긴 검은 머리.
작은 얼굴.
자연스럽게 붉은 눈.
세로 줄무늬가 들어간 흰 셔츠는 목 부분이 느슨하게 열려 있었고, 검은 이너 위로 풀린 넥타이가 길게 내려와 있었다. 블레이저는 없었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피곤해 보였다.
그 피곤함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창문도 오른쪽인데."
내가 말했다.
제인은 내 담배를 보고, 열린 창문을 보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면 왼쪽은 제 자리네요."
그게 첫 대화였다.
◆ ◆ ◆
캘빈은 십 분 뒤에 들어왔다.
그는 우리 둘의 상사였다.
말끔한 셔츠.
얇은 넥타이.
정리된 손톱.
왼쪽 눈은 오른쪽보다 조금 옅었다.
조명 탓이라고 생각했다.
캘빈은 갈색 사건철을 내 책상 위에 던졌다.
"여섯 달. 네 명."
첫 번째 피해자는 보험 감정사였다.
두 번째는 미술품 운송회사 직원.
세 번째는 복원사.
네 번째는 이름 없는 경매 중개인.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사망 장소도 달랐다.
호텔 객실.
지하 주차장.
복원 작업실.
자기 집 욕실.
공통점은 하나였다.
네 사람 모두 죽기 전 같은 그림을 만졌다.
사건철 안에는 오래된 초상화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검은 배경.
금이 간 황금색 장식틀.
그림 속 남자는 지나치게 희고 아름다웠다. 왼팔이 얼굴의 윗부분을 가리고 있어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날개는 없었지만, 등 뒤의 어둠이 날개가 뜯겨나간 자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분류번호가 찍혀 있었다.
UMO.
그리고 검게 지워진 소유기관명 끝에 세 글자만 남아 있었다.
C.A.S.
"미술품 연쇄살인입니까."
내가 물었다.
"살인사건이다."
캘빈이 말했다.
"미술품은 증거고."
제인이 사진을 한 장 빼냈다.
"네 명 다 그림을 본 뒤 죽었는데요."
"그래서 네가 그림을 보게 됐지."
"제가 죽으면 사건이 다섯 건이 되겠네요."
캘빈은 웃지 않았다.
"그 전에 끝내."
그는 문을 닫고 나갔다.
◆ ◆ ◆
제인은 사진을 한참 봤다.
"잘생겼네요."
"죽은 사람 넷보다?"
"죽은 사람들은 사진이 흐려서."
한 박자 늦게 농담이라는 걸 알았다.
제인은 웃지 않았다.
나도 웃지 않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같이 움직였다.
◆ ◆ ◆
사건은 평범한 살인으로 시작해 평범하지 않은 서류로 끝났다.
피해자들의 몸에는 공통된 상처가 없었다.
한 명은 목이 부러졌다.
한 명은 심장이 멎었다.
한 명은 욕조에서 익사했다.
마지막 피해자는 방 안에서 모든 피를 잃었는데 바닥에는 한 방울도 없었다.
대신 네 명의 몸에서 같은 것이 나왔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흰 실.
손가락 사이.
혀 밑.
심장막 안쪽.
법의관은 섬유라고 적었다.
성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표본은 이틀 뒤 증거보관실에서 사라졌다.
제인은 없어진 표본보다 없어지지 않은 도장을 봤다.
운송서류 모서리에 눌린 작은 인장.
세 개의 선이 원 안에서 서로를 피하고 있었다.
"이거 본 적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없어."
거짓말이었다.
고아원 장부 뒷면에도 비슷한 자국이 있었다. 당시에는 커피가 번진 얼룩이라고 생각했다.
제인은 내가 거짓말하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고 캐묻지는 않았다.
그게 제인의 방식이었다.
사람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도망갈 방향을 먼저 막아두고 기다렸다.
◆ ◆ ◆
첫 번째로 같이 들어간 현장은 폐쇄된 인쇄소였다.
죽은 경매 중개인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그곳에서 끊겼다. 건물 뒤편 철문에는 자물쇠가 걸린 것처럼 보였다.
제인이 문 앞에 섰다.
"비켜요."
"왜."
"열게요."
제인이 한 걸음 물러났다.
구두 끝이 문 한가운데를 때렸다.
쾅.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검은 구두 굽이 빠져 복도 끝까지 날아갔다.
제인은 한쪽 발이 낮아진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돌렸다.
문이 열렸다.
제인이 열린 문과 복도 끝의 구두 굽을 번갈아 봤다.
"안 잠겼네요."
"그러네."
"문이 거짓말했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 내 웃었다.
짧았지만 실제로 웃었다.
제인은 내가 웃는 동안 복도 끝까지 걸어가 굽을 주웠다. 주머니에서 증거봉투를 꺼내 안에 넣었다.
"뭐 하냐."
"현장 훼손 방지요."
웃음은 문 안쪽에서 끝났다.
사무실 한가운데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의자에 묶인 것도 아니었다. 책상 앞에 바르게 앉은 채 고개만 뒤로 젖혀져 있었다.
입은 벌어져 있었다.
혀 밑에서 흰 실이 여러 가닥 나와 천장의 환풍구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환풍구를 올려다봤다.
덮개 틈으로 실이 들어가 있었다. 실은 팽팽했다. 무언가가 저 안에서 이쪽으로 한 번 지나갔고, 지나간 자국만 남은 것 같았다.
제인은 부러진 굽이 든 증거봉투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 뒤로 한동안 농담하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의 책상 밑에 검은 단화 한 켤레를 뒀다.
싸고 굽이 낮았다.
제인은 출근하자마자 신발 상자를 열었다.
"이거 형사님 취향이에요?"
"문 열리는 신발이야."
"구리네요."
그녀는 그날부터 그 신발을 신었다.
버리지는 않았다.
◆ ◆ ◆
우리는 밤마다 사건기록을 다시 맞췄다.
제인은 왼손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오른손으로 피해자의 동선을 그렸다. 얼음이 다 녹아도 버리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들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
"왜 계속 그걸 들고 있어."
"차가우니까."
"다 녹았는데."
"그러면 덜 차갑죠."
그녀는 대답한 뒤 한참 있다가 컵을 내려놓았다.
그런 식이었다.
대화는 짧았고, 의미는 나중에 왔다.
한번은 역 앞에서 운송업자를 잠복했다.
새벽 세 시였다.
제인은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가 없었다.
"왼쪽 주머니."
제인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누구 주머니."
"제 거요."
그녀의 셔츠 주머니에 내 라이터가 들어 있었다.
"왜 네가 갖고 있어."
"매번 잃어버리니까."
"훔쳤네."
"보관이에요."
"언제부터."
"세 번째 사건부터."
"지금 몇 번째인데."
"세어본 적 없어요."
제인은 그대로 잠들었다.
대상이 편의점을 나왔을 때도 깨지 않았다.
나는 혼자 내려가 그를 잡았다.
손목에 수갑을 채워 뒷좌석에 밀어 넣고 나서야 제인이 눈을 떴다.
뒤를 돌아본 그녀와 용의자의 눈이 마주쳤다.
"누구예요?"
제인이 물었다.
용의자가 먼저 대답했다.
"잡혔습니다."
제인은 나를 봤다.
"왜 안 깨웠어요?"
"자고 있었잖아."
"직무유기네요."
"네가."
용의자가 뒷좌석에서 웃었다.
제인도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내 책상에는 새 라이터가 놓여 있었다.
내가 쓰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가격표만 떼지 않은 채였다.
◆ ◆ ◆
그 운송업자는 사흘 뒤에 죽었다.
고가도로 아래에서 발견됐다. 목이 부러져 있었고, 소지품은 그대로였다.
담당은 우리가 아니었다. 사고사로 넘어갔다.
그 무렵 다른 시체도 봤다.
욕조에 앉은 채 잠든 여자.
항구 냉동창고에서 얼음과 함께 나온 운전기사.
전부 초상화와 상관없는 죽음으로 분류됐다.
죽음은 사건을 가리지 않고 끼어든다.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세 건의 사망 시각을 우리 일지 옆에 놓고 봤다.
운송업자는 우리가 그를 잡은 다음이었다.
욕조의 여자는 제인이 그 이름을 서류에서 찾아낸 다음 날이었다.
냉동창고 운전기사는 우리가 창고 출입기록을 조회한 날 밤이었다.
셋 다 우리가 먼저 갔고, 그다음에 죽었다.
그건 우연이 만드는 순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어디를 보는지 아는 사람이 있었고, 우리보다 조금 빨랐다.
그럴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나는 그 일지를 서랍에 넣고 잠갔다.
제인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제인이 먼저 움직일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첫 번째 멍청한 짓이었다.
◆ ◆ ◆
제인은 초상화가 보관된 격리 미술관에 자주 갔다.
미술관이라고 불렸지만 일반 관람객은 들어갈 수 없었다. 항구 금융재단이 운영하는 회색 건물이었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복원실.
3층은 창문 없는 격리 전시실.
뒤편 화물 통로는 부두로 이어졌다.
그림은 3층 끝방에 걸려 있었다.
제인은 그림 앞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작은 스케치북을 무릎 위에 놓고 초상화를 따라 그렸다.
"수사 중에 취미생활이냐."
내가 물었다.
"복사예요."
"사진 있잖아."
"사진은 그림이 보는 방향을 못 잡아요."
"그림이 뭘 보는데."
"지금은 나."
나는 초상화를 봤다.
그림 속 남자의 시선은 팔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눈이 마주치는 싸구려 그림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제인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팔 아래에 가려진 눈이 아주 조금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제인의 커피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스케치북에 번졌다.
그녀는 얼룩 위에 연필로 선을 더했다.
"망쳤네."
"원래 있던 눈이에요."
"방금 생겼잖아."
"그림도 그럴 수 있죠."
제인은 스케치북을 덮었다.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그림자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제인은 거울을 봤다.
"당신은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조용하네요."
"칭찬이냐."
"경고."
손은 금방 떨어졌다.
◆ ◆ ◆
제인이 운송업자를 다섯 번째 칸에 적어 넣은 건 그다음 주였다.
그림을 만진 적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림을 만진 사람들을 실어 나른 사람이었다.
"올려도 안 받아줄 텐데."
"안 받아주는 것도 기록이에요."
그날 윗선에서 사건을 닫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개별 사인 확정.
증거 불충분.
사건 간 연관성 없음.
UMO 사진은 반환.
캘빈은 사건철을 회수하러 왔다.
"여기까지다."
제인이 물었다.
"무엇이요."
"수사."
"사람 다섯 명이 죽었어요."
"네 명이다."
캘빈은 제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다섯 번째가 되기 싫으면 숫자 세는 법부터 고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담배를 껐다.
숫자를 세는 법.
넷이라고 말한 건 캘빈이었다. 다섯이라고 말한 건 제인이었다.
일곱이라고 셀 수 있는 건 내 서랍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서랍을 열지 않았다.
캘빈의 왼쪽 눈이 형광등 아래에서 희게 번졌다가 돌아왔다.
"사건철 내놔."
제인은 서랍에서 갈색 파일을 꺼냈다.
순순히 건넸다.
캘빈이 나가고 나서야 나는 파일이 가벼워진 걸 알았다.
안쪽의 초상화 사진과 운송기록 두 장이 빠져 있었다.
"어디 갔어."
"반환했죠."
"누구한테."
제인은 녹아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원래 있던 데."
"혼자 가지 마."
"그건 부탁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봤다.
늘 피곤해 보이던 눈이 그날은 이상하게 맑았다.
린이 마지막 밤에 보였던 눈과 비슷했다.
이미 어디까지 갈지 정해놓은 사람의 눈.
나는 그 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제인."
"알아요."
"뭘."
"당신이 싫어하는 표정."
제인은 빈 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컵은 가장자리에 맞고 튀어 올라 그녀의 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나도 바로 웃었다.
제인이 컵을 내려다봤다.
"이건 들어가고 싶지 않대요."
"존중해줘."
그녀는 컵을 책상 위에 다시 올렸다.
"못 본 걸로 해요."
"뭘."
"전부."
제인은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뒤를 따라가려다 멈췄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쓰던 검은 단화 한 켤레가 있었다.
그날은 다시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본 평범한 제인이었다.
◆ ◆ ◆
새벽 한 시 십칠 분.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
발신자는 제인.
문장은 두 단어였다.
chase me.
나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제인이 남긴 스케치북을 펼쳤다.
마지막 장에는 초상화가 없었다.
항구 지도 위에 금색 액자 모양의 사각형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커피 얼룩.
화물 엘리베이터 번호.
03.
격리 미술관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관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었다. 경비실은 비어 있었고, 출입기록 화면은 새벽 한 시부터 멈춰 있었다.
1층에는 피가 없었다.
2층에도 없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뚜껑 하나를 밟았다.
검은 빨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인은 커피를 다 마시지 않았다.
뚜껑만 따로 버리지도 않았다.
일부러 남긴 흔적이었다.
세 번째 층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끝방 문만 열려 있었다.
나는 총을 뽑고 들어갔다.
◆ ◆ ◆
처음 보인 것은 캘빈의 등이었다.
그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있었다.
오른팔은 제인의 얼굴 위를 가로질렀다. 팔뚝이 이마와 눈을 가렸고, 손은 뒤통수를 받치고 있었다.
왼손은 제인의 턱을 잡고 있었다.
그는 힘이 빠진 제인의 얼굴을 들어 초상화와 맞대고 있었다.
제인의 입술과 그림 속 남자의 입술이 눌려 있었다.
멀리서 보면 입맞춤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죽은 몸을 장치에 끼워 넣는 일이었다.
제인의 목은 캘빈의 손에 따라 힘없이 젖혀졌다.
흰 셔츠의 가슴에는 검은 구멍이 세 개 있었다.
하나.
둘.
셋.
세 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셔츠 아래에서 합쳐져 검은 치마와 바닥으로 내려갔다.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다.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손가락에는 힘이 없었다.
붉은 눈은 반쯤 드러나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제인은 죽어 있었다.
그 사실은 그림보다 먼저 보였다.
초상화는 벽에서 내려와 검은 천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림 속 남자는 팔로 얼굴의 윗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캘빈의 왼쪽 눈은 완전히 희었다.
제인의 가슴에서 흰 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실은 상처를 봉합하지 않았다.
피를 막지도 않았다.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캘빈의 손목과 제인의 총상 사이에서 실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탄두는 캘빈의 어깨를 향했다.
흰 실 한 가닥이 총알 옆면을 때렸다.
탄두가 비틀려 액자 모서리를 깨고 벽에 박혔다.
캘빈은 돌아보지 않았다.
◆ ◆ ◆
초상화의 검은 배경이 움직였다.
연기처럼 피어오르지 않았다.
오래된 유화에서 긁혀 나온 젖은 물감처럼, 검은 표면이 끈적하게 늘어났다.
빛이 닿는 안쪽에서 더럽고 짙은 녹색이 드러났다.
녹슨 금속에 오래 고인 기름 같았다.
깊은 바다 밑에서 떠오른 얇은 막 같기도 했다.
그림 속 남자의 입술에서 색이 빠졌다.
희던 턱과 목의 윤곽이 흐려졌다.
검은 배경의 깊이가 얕아졌다.
빠져나온 색과 형태는 맞닿은 입술 사이를 지나 제인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는 코와 목으로 스며들었다.
일부는 흰 실 사이를 비집고 총상 안으로 들어갔다.
제인의 피부 아래에 검은 선이 생겼다.
검은색 밑에서 탁한 녹색이 썩어 움직였다.
그림은 제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방향은 분명했다.
초상화의 색이 빠지고 있었다.
제인의 몸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먹히는 쪽은 제인처럼 보였다.
액자 안쪽의 깊이가 제인의 몸보다 커졌다.
제인의 실루엣 가장자리가 그림 쪽으로 접히는 것처럼 흔들렸다.
그녀의 입이 그림을 빨아들이는 통로인지, 그림이 그녀를 먹는 입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제인은 무언가를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삼킨 것의 내부에서 다시 제인을 삼키는 느낌이 났다.
흰 실과 짙은 녹색·검은 성질이 반대 방향으로 당겨졌다.
일부 실은 검게 탔다.
일부는 색을 잃었다.
나머지는 끝까지 제인의 몸을 붙잡았다.
나는 달려갔다.
캘빈이 제인의 얼굴을 초상화에서 떼어냈다.
힘없는 목이 뒤로 꺾였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인의 머리카락이 피 위에 퍼졌다.
초상화 속 남자는 사라져 있었다.
검은 배경도 깊이를 잃었다.
금색 액자 안에는 탁한 캔버스와 희미한 얼룩만 남아 있었다.
제인은 그대로 바닥에 있었다.
눈을 뜨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나를 보지 않았다.
죽은 몸 안에 그림이 들어갔고, 죽은 몸은 그대로였다.
◆ ◆ ◆
내 왼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길어졌다.
손바닥 아래에서 검은 선들이 벌어졌다.
그림자가 내 호흡보다 먼저 앞으로 나갔다.
잇몸 안쪽에서 차가운 실이 올라왔다.
캘빈은 내 손을 봤다.
하얀 왼쪽 눈이 한 번 좁아졌다.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팔이 완전히 움직이기 전이었다.
첫 세 발은 거의 한 소리였다.
첫 발이 머리를 옆으로 틀었다.
두 번째 발에 형광등이 부서졌다.
세 번째 발에 제인의 커피 냄새가 끊겼다.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두 발이 더 왔다.
네 번째 발에 바닥이 얼굴로 올라왔다.
다섯 번째는 이미 감각이 없어진 곳을 확인했다.
모든 게 내가 팔을 한 번 휘두르는 것보다 빨랐다.
바닥에 쓰러지며 제인을 봤다.
힘없는 손끝.
흰 셔츠 위의 세 구멍.
피에 붙은 검은 머리카락.
녹아버린 얼음.
검은 단화.
우리 사이에 떨어진 라이터.
내용이 빠져버린 초상화.
내 피가 제인의 피 쪽으로 흘렀다.
두 색은 구분되지 않았다.
제인이 죽었다.
나도 죽었다.
캘빈의 구두가 우리 사이에 멈췄다.
그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처리할 순서를 확인했다.
시야가 닫혔다.
◆ ◆ ◆
눈을 떴을 때는 금속 안이었다.
완전히 뜬 건 아니었다.
빛은 없었다.
머리는 열려 있는 것 같았고, 입안에는 피와 시멘트 가루가 섞여 있었다. 허리 아래는 굳어가는 무게에 눌려 있었다.
드럼통.
바깥에서 파도 소리가 났다.
디젤.
기름.
녹.
바닷물.
금속 바닥 아래에서 엔진이 울렸다.
배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제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녀는 바닥에 남아 있었다.
가슴에 세 발을 맞고.
숨을 쉬지 않고.
그림을 몸 안에 넣은 채.
그 뒤 캘빈이 그녀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몰랐다.
캘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것까지 직접 해야 하나."
라이터가 켜졌다.
담배 연기가 드럼통 뚜껑 틈으로 아주 조금 들어왔다.
나는 제인의 이름을 생각했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안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죽었다.
The Man이었다.
열네 살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 없는 것이 내 안에서 목을 세웠다.
—둘 다 죽었지.
'살려.'
—누구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인은 죽었다.
구할 대상이 아니었다.
남은 건 캘빈이었다.
'나를.'
The Man이 웃는 기척이 났다.
입이 없는 웃음이었다.
—삼 분.
'뭐.'
—네 몸을 삼 분 빌린다. 단 한 번. 시간은 내가 고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붙여준다. 빼앗는 건 나중이다.
제인의 빈 컵.
부러진 구두 굽.
검은 단화.
내 라이터.
그리고 마지막 문장.
chase me.
'가져.'
—계약됐다.
◆ ◆ ◆
드럼통 안쪽에서 금속이 울렸다.
검은 가시 하나가 옆면을 뚫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일곱 개의 가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터져 나갔다.
시멘트가 갈라졌다.
철판이 접혔다.
드럼통 뚜껑이 갑판 위로 날아갔다.
그중 하나가 캘빈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체가 든 통이었으니까.
시체를 넣은 건 본인이었으니까.
캘빈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가시를 잡고 몸에서 뽑아냈다.
상처에서 피 대신 흰 액체가 흘렀다.
"미카엘."
캘빈이 불렀다.
자기 이름이 아니었다.
왼쪽 눈이 다시 희어졌다.
◆ ◆ ◆
먼저 뜬 건 탄환이었다.
캘빈의 어깨와 등 뒤에서 흰 것들이 하나씩 올라와 공중에 멈췄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크기에, 끝이 둥글고 뒤가 잘린 모양이었다.
권총에서 뽑아낸 탄두를 흰색으로 칠해놓은 것 같았다.
열 개.
스물.
세는 걸 그만뒀다.
전부 총구처럼 나를 향했다.
"바늘."
캘빈이 말했다.
명령인지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둘 다인 것 같았다.
총알처럼 생긴 걸 바늘이라고 부르는 인간이었다.
첫 번째가 왔다.
나는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귀 옆을 지나갔다.
맞지 않았는데 목이 뜨거워졌다.
지나간 자리에 흰 선이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얇고, 아주 약하게 빛났다.
내 목가죽이 그 선에 스쳐 있었다.
선은 두 번쯤 숨 쉬는 동안 공중에 떠 있다가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총알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때 이 능력의 구조를 이해했다.
바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게 목적이었다.
바늘이 지나가면 실이 따라온다.
피한 자리마다 칼이 하나씩 남는 거였다.
네 명의 몸 안에서 나온 흰 실.
혀 밑.
손가락 사이.
심장막 안쪽.
전부 무언가가 한 번 지나간 자국이었다.
살 안쪽에 남은 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거기서 알았다.
동시에 다른 것도 알았다.
저 사람은 그걸 몸에서 빼지 않았다.
빼려면 뺄 수 있었을 것이다.
넉 달을 그렇게 뒀다가, 우리가 표본을 채취한 다음에야 보관실에서 치웠다.
들키기 전에 치우는 게 아니라 들키고 나서 치우는 인간이었다.
강한 사람이 대충 사는 방식이었다.
◆ ◆ ◆
캘빈이 손가락을 폈다.
스무 개가 동시에 왔다.
◆ ◆ ◆
오른팔에서 한 가닥이 나왔다.
팔뚝 바깥쪽 살이 세로로 갈라지면서 검은 것이 밀고 올라왔다.
셋을 한 번에 쳐냈다.
넷은 옆으로 밀렸다. 나머지는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마다 흰 선이 남았다.
거기까지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걸 시킨 적이 없다는 것.
반의 반 박자였다.
그 사이에 저건 이미 셋을 쳐낸 뒤였다.
나는 그게 뭘 뜻하는지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 ◆ ◆
갑판 위 공기가 얇게 그어지기 시작했다.
뒤로 뛰지 않았다.
뒤로 가면 선이 쌓인다.
한 걸음 앞으로 갔다.
그다음 걸음에서 오른팔을 내줬다.
정확히는 팔 앞쪽을 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살이 찢어졌다. 소리는 종이 찢는 소리에 가까웠다.
거의 동시에 세 개가 더 나왔다.
등에서 둘. 어깨뼈 아래가 안쪽에서부터 벌어졌다.
왼팔 전완에서 하나.
찢어진 오른팔은 그 직후에 붙었다.
전부 네 개였다.
사람 키보다 길었다. 뿌리 쪽은 팔뚝만큼 굵고,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다가 마지막 한 뼘이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거기가 날이었다.
관절은 없었다.
꺾이는 게 아니라 휘었다. 채찍이 휘는 방식이 아니라, 물속에서 팔을 젓는 방식으로 휘었다.
찢기면 붙었다.
붙은 자리로 또 하나가 지나갔다.
또 붙었다.
거리는 여섯 걸음.
세 번 만에 갔다.
첫 번째 발에 갑판 철판이 접혔다.
두 번째에 컨테이너 모서리가 어깨에 걸렸다.
세 번째에 캘빈의 앞이었다.
◆ ◆ ◆
거기서부터가 길었다.
캘빈은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날 수 없었다.
뒤쪽 공기에 자기가 뿌린 선이 세 겹으로 깔려 있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팔 하나 반쯤 되는 거리에 붙어 있었다.
그 안에서 스무 개가 돌았다.
정면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옆에서, 뒤에서, 위에서 왔다. 지나갔다가 되돌아왔다.
네 개가 그걸 전부 받아냈다.
오른쪽 위에서 온 것을 등의 첫 번째가 쳐냈다.
왼쪽 아래를 팔의 하나가 막았다.
되돌아온 두 개를 등의 두 번째가 한 번에 걷어냈다.
한 번 쳐낼 때마다 두 가지가 같이 일어났다.
잘린 자리가 그 자리에서 붙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나왔다.
넷이 여덟이 됐다.
여덟이 열몇 개가 됐다.
세는 걸 그만둔 건 스물을 넘기면서였다.
등이 계속 갈라졌다. 팔도, 옆구리도, 목 뒤도.
살이 열리는데 아프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캘빈도 늘렸다.
스무 개가 마흔이 되고, 마흔은 세지 못했다.
팔 하나 반쯤 되는 거리 안에서 검은 것과 흰 것이 백 개 단위로 오갔다.
소리는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젖은 종이를 손톱으로 긁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게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고 겹쳐서 한 줄기가 됐다.
그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한 번 쳐낼 때마다 흰 선이 하나씩 남았다.
남은 선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선이 겹쳤다.
캘빈의 오른손이 계속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가 한 번 접힐 때마다 궤도가 바뀌었다.
손을 자르면 됐다.
그건 그쪽도 알고 있었다.
다섯 개가 내 오른손목 앞에서 서로 교차했다.
선이 다섯 겹으로 겹쳤다.
거기 손을 넣으면 손이 없어진다.
나는 손을 넣지 않았다.
칼날 하나를 발밑 철판에 박고, 그 축으로 몸을 통째로 돌렸다.
교차점 아래를 스치듯 지나갔다.
등가죽이 열렸다.
붙었다.
◆ ◆ ◆
촉수는 얇아지지 않았다.
처음 나온 것도 백 번째로 나온 것도 팔뚝만큼 굵었다.
밀리는 건 그쪽이 아니었다.
겹친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기가 층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조금씩 줄었다.
어깨를 낮췄다.
무릎을 접었다.
그다음엔 접을 데가 없었다.
이기고 있는데 좁아지고 있었다.
길게 갈 수 없었다.
캘빈의 얼굴에는 아직 표정이 없었다.
인간 쪽 얼굴이 아니었다.
일을 처리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그러면서 봤다.
어깨 상처에서 나온 흰 액체가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매번 가슴으로 돌아갔다.
빗나간 것들도 그랬다. 궤도를 크게 돌아 결국 같은 쪽으로 붙었다.
왼쪽 눈.
손목.
어깨.
전부 한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심장 뒤였다.
◆ ◆ ◆
정면에서 하나가 왔다.
등의 첫 번째로 옆에서 때렸다.
정확히 맞히지 않고 옆면을 비스듬히 밀었다.
탄환이 방향을 틀면서 날 끝을 되밀었다.
그 되밀린 힘이 어깨까지 올라왔다.
나는 그걸 막지 않았다.
거기 얹었다.
칼날이 밀린 방향 그대로 위로 튀어 올라 캘빈의 목을 지나갔다.
닿았다.
깊지는 않았다.
목 옆에 한 뼘쯤 되는 선이 생겼고, 그 자리에서 흰 액체가 셔츠 깃으로 내려갔다.
캘빈이 처음으로 뒤로 반 걸음 갔다.
표정이 생겼다.
놀란 얼굴이었다.
죽인 사람이 앞에 서 있는 걸 그제서야 확인한 얼굴이었다.
◆ ◆ ◆
공중의 바늘이 전부 멈췄다.
방향을 바꿔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캘빈의 오른손 앞이었다.
지금까지는 뿌리고 있었다.
이제는 모으고 있었다.
저게 완성되면 컨테이너 열 몇 개는 같이 뚫릴 것 같았다.
"죽은 건 죽어 있어야지."
목소리가 두 겹이었다.
The Man이 안에서 말했다.
—손잡이다.
나는 그걸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선이 몇 겹으로 깔렸는지 셀 수 없었다.
여차하면 목부터 잘릴 판이었다.
모이던 것이 방향을 되찾기 전에 왼손을 갈비뼈 아래로 밀어 넣었다.
심장을 노렸다.
엄지가 심장에 닿았다.
그런데 약지 끝에 다른 게 걸렸다.
그것보다 뒤였다.
사람 뼈와 모양이 달랐다.
작고 납작한 날개.
거기서 바꿨다.
심장은 사람의 급소다.
이건 사람이 아니었다.
엄지는 심장에 얹어둔 채로 손을 한 마디 더 밀어 넣었다.
약지가 날개 아래를 걸었다.
새끼손가락을 그 틈에 찔러 넣었다.
캘빈의 왼쪽 눈이 크게 열렸다.
"기다려—"
휘저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젖은 것이 안에서 터지는 소리였다.
뭉개진 것을 약지에 걸어 뜯어냈다.
공중의 바늘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선을 남기지 않았다.
캘빈이 두 걸음 물러났다.
가슴을 누른 채 나를 봤다.
남은 것은 인간 쪽 얼굴이었다.
"네가 뭘—"
한 번이면 끝났다.
나는 한 번에 끝내지 않았다.
칼날 하나가 어깨를 지나 목을 지나 갑판까지 갔다.
두 번째가 반대쪽에서 왔다.
세 번째부터는 세지 않았다.
캘빈의 몸이 갑판에 눕기 전에 형태가 여러 번 바뀌었다.
마지막에는 무릎으로 눌렀다.
가슴이 접히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로도 조금 더 눌렀다.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 ◆ ◆
촉수가 하나씩 몸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자리가 순서대로 닫혔다. 등도, 팔도, 옆구리도, 목 뒤도.
닫히고 나서야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얼굴에서 떨어진 피가 신발 끝을 적셨다.
선 하나가 얼굴을 지나가 있었다.
왼쪽 눈썹 위에서 시작해 뺨을 지나 입 아래를 긁고 오른쪽 턱 아래까지.
한 치만 더 깊었으면 왼쪽 눈과 목이 함께 끊어졌을 것이다.
언제 스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백 개가 넘는 선 중에 어느 것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투 중에 아프지 않은 상처는 나중에 한꺼번에 온다.
The Man이 말했다.
—아직 안 썼다.
삼 분.
그 권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게 그날 The Man이 나한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 뒤로 육 년 동안, 그건 한 번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 ◆ ◆
내 손에는 부서진 날개뼈 조각이 들려 있었다.
희고 얇은 선들이 부러진 끝에서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걸 난간 밖으로 던졌다.
떨어지는 건 보지 않았다.
갑판에는 흰 탄환이 흩어져 있었다.
그걸 바늘이라고 부를 사람은 이제 없었다.
전부 빛을 잃고 있었다.
하나만 아니었다.
캘빈의 가슴 아래에 박힌 것 하나가 아직 희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한참 봤다.
뽑지 않았다.
뽑아서 어디에 둘지 정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게 쉬웠다.
그게 두 번째 멍청한 짓이었다.
◆ ◆ ◆
캘빈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맥박은 없었다.
왼손 하나로 그의 허리춤을 잡았다.
몸을 들어 왼쪽 어깨에 걸쳤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씨발...."
갑판 한가운데에는 내가 들어 있던 드럼통이 세로로 세워져 있었다.
안쪽에는 깨진 시멘트가 절반쯤 남아 있었다.
나는 캘빈을 머리부터 넣었다.
머리가 시멘트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가 입구에 걸렸다.
한 번 눌렀다.
뼈가 접히는 소리가 났다.
다리와 신발이 밖에서 잠깐 흔들렸다.
한 번 더 밀었다.
캘빈은 드럼통 안으로 사라졌다.
◆ ◆ ◆
나는 선미 쪽 난간으로 두 걸음 갔다.
배는 항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맞은편의 모래사장이 멀어졌다.
비에 젖은 모래는 도시의 불을 얇게 반사했다.
그 뒤로 낮은 건물과 창고, 아직 꺼지지 않은 도로의 불빛이 이어졌다.
격리 미술관이 어느 건물인지 이제는 구분할 수 없었다.
바다는 회색과 짙은 청색 사이에 있었다.
캘빈의 담뱃갑이 갑판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하나 꺼내 물었다.
불은 세 번 만에 붙었다.
연기가 바람을 따라 옆으로 밀렸다.
제인의 부러진 구두 굽이 떠올랐다.
내가 사준 싸구려 단화.
차 안에 두고 간 반쯤 녹은 커피.
내 주머니에 없던 라이터.
한 번 바로잡아준 넥타이.
쓰레기통에서 손으로 돌아온 빈 컵.
초상화의 입술에 눌린 죽은 입술.
흰 셔츠 위의 총상 세 발.
피에 젖은 바닥.
chase me.
제인은 죽었다.
나는 봤다.
그림은 그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먹히는 쪽은 제인처럼 보였다.
캘빈이 그 몸을 그 뒤 어떻게 했는지는 몰랐다.
알아낼 방법도 지금은 없었다.
◆ ◆ ◆
담배가 반쯤 탔을 때 생각났다.
서랍에 넣고 잠가둔 일지.
운송업자. 욕조의 여자. 냉동창고 운전기사.
우리가 먼저 가고, 그다음에 죽은 세 사람.
넷이 아니라 일곱이었다.
나는 드럼통 쪽을 봤다.
"일곱도 네가 한 거냐고 안 물어봤네."
대답은 없었다.
물어볼 수 있을 때 안 물어봤다.
그게 세 번째였다.
나는 담배를 마저 피웠다.
몸을 돌리지 않았다.
오른쪽 뒤에 드럼통이 세워져 있었다.
왼발을 오른쪽 뒤로 접었다.
뒤꿈치로 드럼통 옆면을 가볍게 쳤다.
툭.
드럼통은 갑판 위를 구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선미 난간을 넘어 검은 바다 위로 날아갔다.
잠시 뒤 물에 떨어졌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사람이 사라지는 소리는 언제나 생각보다 가벼웠다.
나는 드럼통이 가라앉는 것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멀어지는 도시와 그 뒤의 수평선에 남아 있었다.
◆ ◆ ◆
선실로 내려가 캘빈의 휴대전화와 사건철을 찾았다.
내 이름이 찍힌 처리보고서가 있었다.
사망.
신원 확인 완료.
시신 유실.
작성 시각은 내가 총을 맞기 전이었다.
서류는 늘 사람보다 먼저 죽었다.
제인의 이름은 없었다.
사망자 명단에도.
실종자 명단에도.
인사기록에도.
처음부터 경찰서에 근무한 적 없는 사람처럼 비어 있었다.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의 명단은 나한테 익숙했다.
열네 살 때 그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내 휴대전화에는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chase me.
나는 삭제하지 않았다.
항로표를 펼쳤다.
다음 기항지는 카베신시티였다.
동이 틀 무렵, 바다는 회색이었다.
해안선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
제인은 죽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육지에 남았고, 나는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카베신시티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물어봤다면 나는 그녀의 성을 댔을 것이다.
아무도 묻지 않아서, 내가 먼저 댔다.